설교영상

주일 본 예배

인생별곡 - 미완성에서 완성으로

열왕기하 12장 1~3절

2021.11.21 / 이찬규 목사

1. 애를 써도 못 끝내는 인생

열왕기서는 말 그대로 왕들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둘로 나뉘어집니다. 다윗과 솔로몬의 뒤를 이어서 북왕국 이스라엘, 남왕국 유다. 그들은 각기 제국의 힘에 밀려서 멸망하게 되는데, 39, 각각19, 20명의 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왕들의 이야기라고 말하지만, 왕이 역사의 중심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제일 큰 주제가 있다면, ‘우리 인생에 누가 왕인가?’라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주요, 우리의 설계자요, 우리 운명의 연출자가 아니시라면, 인생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당연히 입니다. 내 자아가 인생의 주인이고, 내가 내 인생의 모든 결정 권한을 가졌고, 나를 위해서 사는 것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명이 우리의 의지에 달려있지 않은 것이라면, 우리의 생명이 거룩한 설계자, 거룩한 연출자에게.. 또 우리의 삶의 의미와 우리 인생의 완성이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컴퓨터의 단말기와 같고, 그 본체는 따로 주관하시는 이가 있는 것이라면, 그분이 우리의 왕이 되시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저 올림푸스 신화에 있는, 우리 인생에 가끔씩 관여하는 절반의 신이 아니고, 부적처럼 우리를 위해서 조력하는 어떤 그런 신이 아니고, 정말 우리의 생명의 주이신 분! 그분을 우리는 왕으로 인정하기로 했고, 인격적인 호칭으로 아빠, 아버지! 우리의 아버지라고 부르기로 한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왕되신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열왕기는 바로 이것을 시험하고 있는 책입니다. 너희들의 인생에 참된 왕이 누구냐? 여기에 뽑혀 있는 왕은 하나님의 대리자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고, 전권을 위임 받아서,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사람들.. 열왕기는 그런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하나님의 대리자, 그들은 대표단수입니다. 적용해보면, 저와 여러분, 우리 한마음교회는 디아스포라 교회의 대표단수입니다. 우리가 훌륭하고 대단하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우린 그런 자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교회들도 역시 그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대표자, 우리의 대리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그를 우리의 창조자, 구원자, 설계자, 또 역사를 완성하시는 분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그런 우리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뭐가 다른데? 그래서 어떻게 할껀데?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실험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이들의 삶의 실험. 그래서 우리는 대표단수입니다.

 

열왕기의 왕들은 이 기준에서 정말 하나님을 진정한 왕으로 주권자로 섬기로, 그렇게 살았느냐? 라는 기준으로 볼 때, 39명의 왕 중에서 합격한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불행하게 삶을 마감한 왕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물론 그 중에는 백향목으로 왕궁을 짓고, 또 수천필의 말을 거느리고, 외교 관계에서 성공을 거두고, 경제적인 번영을 일으킨 왕들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을 왕으로 선포하고, 그 하나님의 말씀을 나타내고 사는데, 완성형 인간으로 나타나는 이들이 아주아주 적었습니다. 그들은 끝까지 신앙을 지키지 못했고, 우상을 완전히 배제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게 됩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요아스 왕, 유다의 왕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기구한 운명을 이기고 가까스로 왕이 된 사람의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는 보기 드물게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행했다는 평가를 열왕기 기자에게 받습니다. 그러나, 3. 다만 산당들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였더라. 아쉬운 결말, 그는 그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완성하지 못했다고 얘기합니다. 여러분 INC가 뭔줄 아세요? 제가 신학교를 다닐 때, 학기가 끝나면 성적표가 오잖아요. 성적표는 알파벳으로 오지요. 제일 잘하면 A, B면 보통이지요. 대학원을 가거나 유학을 가려면 B이상은 받아야지요. 그런데 그보다 안되면 CDCD하면 학점이 시들시들한 것이지요. 완전히 나가면 FF 쌍권총이 되고, 학사경고를 받게 되지요. 거기에 INC라고 적혀 있는 건, 숙제나 레포트를 안냈어요. 그러면 incomplete 아직 미완성이다. 신학 대학에만 있었는지는 모르겠어요. 자비를 베풀어 기회를 주는 것이지요. 그래서 늦게 제출하면 A는 안줘요. CDCD로 가는 것이지요. 그래도 FF보다는 나으니까.. 그런데 유다와 이스라엘의 왕들 상당수에게 그와 같은 점수가 나오는 거예요. 미완성! 완성하지 못했다! 그들은 왜 그런 평을 받았을까요? 이 요아스는 기구한 운명으로 왕이 되었다고 그랬지요? 태어났는데 갑자기 칼바람이 불었습니다. 그 칼바람의 주체는 친할머니였어요. 아달랴라는 친할머니는 왕의 부인이었는데, 왕이 죽으면 태후가 되거나 은퇴한 왕비가 되어야 하잖아요. 그 아들이 왕이 되었다가 죽으니 완전히 뒤로 물러나야 할터인데, 그 할머니가 갑자기 야망을 발휘하더니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왕자와 왕족들을 다 죽이는 거예요. 왜 그랬을까요? 이 아달랴는 유명한 엘리야 때 북왕국 이스라엘 아합의 딸입니다. 그 어머니는 유명한 악녀 이사벨입니다. 이스라엘에게 바알 우상 숭배를 도입해 들어온 페니키아의 공주 출신이죠. 엘리야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유일한 여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사람들. 자기 왕궁에 우상숭배하는 제사장을 850명을 먹였던 이세벨의 피를 이어받은 것이 아달랴입니다. 아합은 아달랴를 남왕국 유다로 시집을 보내요. 그래서 여호람 왕의 왕비가 되게 합니다. 그녀가 그냥 남왕국에 가서, 그곳은 다윗의 뿌리가 있고,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려고 하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만큼은 메시아의 뿌리를 잇게 하겠다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는데, 아달랴가 가서 동화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녀는 바알 숭배의 극렬한 지지자로 유다에 바알숭배를 퍼트리는 거예요. 그 가운데는 분명히 영적싸움이 있다고 생각해요. 사단의 괴계가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아달냐는 자기가 왕이 되려고 합니다. 자기 아들이 죽었는데 왕이 되기 위해서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사람을 다 죽이는데, 그 의미는 다윗의 씨를 말리는 거예요. 다윗의 혈통을 말리는 거예요. 우리는 쿠테타를 헌정중단사태,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구속사 중단사태가 일어나는 거예요. 그리고 자기가 왕이 됩니다. 그런데 죽이지 못한 왕손이 하나 있었으니, 그가 요아스입니다. 그 갓난아기 요아스. 이 요아스는 가까스로 친족의 도움으로 성전에 숨어 들어서 성전에 피신합니다. 지성소 안에 들어가면 왕도 못들어가요. 대제사장 밖에 못들어가거든요. 그래서 그곳에서 6년을 보내는 것입니다. 얼마나 기구합니까.. 그의 어미도 죽임을 당하고 그래서 성전에서 6년을 지내고 있다가 제사장 여호야다가 다윗의 뿌리를 지키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그래서 일곱살이 된 요아스에게 즉위식을 거행하는 것입니다. 아달랴 할머니는 반역이로다! 외쳤지만, 이미 대세는 넘어갔고, 그녀는 죽임을 당하고요. 그래서 다시 다윗의 뿌리가 이어지게 되는 거예요. 요아스는 그렇게 왕이 되었습니다. 여호야다 제사장은 요아스에게 율법책을 가져다 주고, 모세와 맺은 하나님의 언약을 깨닫게 해 줍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기름을 부어서 다윗을 통해서 하나님은 구원의 역사를 이어가시겠다는 다윗과의 언약을 생각나게 해 줍니다. 그래서 그랬을까요? 요아스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했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잘 수리하고, 예배드리는 일에 힘썼으나, incomplete 사명을 다 감당하지 못했고, 산당을 다 제거하지 못했고, 백성들의 마음을 다 돌려놓지 못했습니다. 그는 작은 여호수아, 작은 솔로몬으로 불리웠던 왕이었는데, 그러나 우상의 자취를 지우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돌아보면 이스라엘의 초대왕이었던 사울도 하나님께 기름 부으심을 받고.. 괜찮았던 사람이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에 하나님으로부터 마음이 멀어집니다. 조그만 사건들로 인해서.. 그는 돌아올 기회가 있었음에도 돌아오지 못했어요. 마지막에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그는 아주 쓸쓸하게 최후를 맞습니다. 미완성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지혜의 왕 솔로몬도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놀라운 업적을 이루었죠. 그는 지혜가 있었고, 이스라엘을 통합왕국으로 가장 전성기를 이끌었던 사람인데, 그러나 어느 순간에 하나님으로부터 마음이 멀어졌습니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은 역시 초라했습니다. 그들에게 돌아온 인생 성적표는 incomplete 완성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돌아왔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뼈아픈 말은 못끝냈다는 말입니다. 공부를 다 못끝냈다는 말, 뼈아픕니다. 빚을 다 못갚았다는 말, 뼈아픕니다. 부모노릇 결국은 끝까지 다 못했다는 말, 뼈아픕니다. 왜 못끝낼까요? 시간이 부족해서? 능력이 부족해서? 상황이 받쳐주지 못해서? 여러분이 갑자기 상처들이 떠오르시나요? 초겨울에 마음도 심란한데, 왜 상처를 들춰내실까^^ 그런데 그런 것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이 됩니다. 대통령들을 보면, 평가가 좋은 사람이 별로 없지요. 왜냐하면 그만큼 많은 기대를 안고 권좌에 오르기 때문인데, 평가가 그렇게 좋지 못해요. 이 정책에 실패하고, 화합에 실패하고, 큰 사건과 국란을 효과적으로 극복하지 못하고, 부정과 부패를 척결하지 못하고, 대통령들에게는 다 아쉬움이 남는데, 제가 인생을 살아보니까, 리더가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얼마나 많은 애를 쓰고, 노심초사 해야 하는지 생각하면 연민이 많이 듭니다. 그들이 얼마나 많은 불면의 날을 지세우고,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왕이라고 해도 다르지는 않을 꺼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들의 미완성, 다 하지 못했다는 말에 대해서 우리는 뭔가 동정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뭔가 이유는 생각해 봐야 되겠습니다. 제가 스포츠 기사는 가끔 봅니다. 이맘때는 한국 야구에 코리안시리즈가 있을 때인데, 지금 한국에 프로야구가 10개팀이 잇는 것으로 제가 아는데, 코리안시리즈가 열렸어요. 2팀이 올라서 왕중왕! 월드 시리즈처럼 패자를 가리는 거예요. 이번에는 서울에 프랜차이즈를 둔 두산 베어스가 올라갔습니다. 1980년에 프로야구가 시작되었는데, 그 때 OB베어스에 25연승을 한 불멸의 투수, 박철순이라는 투수가 있었거든요. 그 팀이 두산 베어스에요. 그 팀은 코리안시리즈를 7번 연속 올라갔는데, 페넌트레이스에서 1위를 해서 올라간 것이 아니고, 1위가 안되었는데도 5위부터는 플레이오프로 자기들끼리 경기를 해서 1팀이 결승에 올라가게 되거든요. 두산 베어스는 1위를 하든지 못하든지 계속 코리안시리즈에 올라갔어요. 7번이나 코리안시리즈에 올라갔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 미라클 두산입니다. 이번에는 5위인가, 4위인가 했어요. 그래서 결승전에 올라가려면 플레이오프를 3번을 해야 하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2번을 더 이기면 결승에 올라가는데, 두산이 올라간 거예요.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래서 결승전에서 붙은 상대는 한번도 우승을 못해 본 팀인데, 어떻게 되었을까요? 두산 베어스가 기적을 이루고, 역시 미라클 두산! 그래서 뭔가 역전의 신화를 이루어지기를 기다렸는데, 두산 베어스가 4번을 연속 힘없이 져서 4연패로 낙마했어요. 아하! 그러면 너무 계속 경기를 하다보니까 지쳤을꺼야, 소진되었을꺼야.. 아니면 주전이 부상했을지도 몰라. 그런데 제가 감독의 인터뷰를 봤어요. 감독이 뭐라고 얘기했을까요. 두산 감독이 쿨하게 인터뷰를 하면서, 하는 말은 전혀 의외였습니다. ‘이 정도면 잘한거예요. 선수들이 자랑스럽습니다. 힘이 좀 빠지고 투수자원이 바닥났습니다.’ 저는 그렇게 얘기할 줄 알았어요. 그랬더니 뭐라고 얘기했느냐하면 선수들의 마음속에 결승전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얘기하는 거예요. 저는 영감이 팍 왔어요. 누가 지려고 하겠어요. 상금도 걸려있고, 자기 연봉도 거기에 따라 계산되는데, 누가 지려고 하겠어요. 프로선수가.. 당연히 이기려고 하지요. 그래서 계속해서 올라온거지요. 결승까지 왔는데, 사실은 그들의 마음속에는 결승까지는 가지 못할꺼야. 우리는 최선을 다할 뿐이야. 결승까지는 가지 못할꺼야. 결승전까지는 생각할 필요는 없어! 누구나 다 그런 마음을 갖고 있었을꺼예요. 그러면서 웃더라고요. ‘그러니 어쩔 수 없죠. 다시 해야죠!’ 그렇게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아하! 그렇구나! 그들은 모두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겠지만, 그러나 결승전은 그들의 마음의 아젠다에 없었다는 거예요. 그러니 어떻게 이기겠냐는 거예요. 말이 됩니다. 설계도에 나타나 있지 않아요. 이 공정이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왜 안되었지요? 보니까 설계도에 없었던 거예요. 설계도에 없는 것을 어떤 공사감독이 구연해 낼 수 있겠습니까?

 

사울왕의 마음 속에는 사실은 돌아갈 것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솔로몬의 마음에도요. 그래 최선은 다 해 볼꺼야. 힘이 들지만, 부담스럼지만그러나 그 마음속에서 포기하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내가 정말 어떤 시련에도, 어떤 반대에도 불구하고, 내가 믿음을 지켜낼까? 우리 한국에 복음이 들어왔을 때, 상투를 틀고 집안에서 축출당할 것을 각오했던 그들은 심각한 세례문답을 받았습니다. 선교사들인 정말로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겠습니까?’ 입을 굳게 다문 그 상투를 튼 남자 세례자가 대답합니다. ‘내 목이 달아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여기에서 돌아서지 않겠나이다.’ 그 믿음이 우리에게 전해진 것입니다. 그 믿음이 살아서 우리에게 전해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글쎄요. 최선은 다 하겠습니다. 제 믿음은 진짜입니다. 그런데.. 모르겠어요. 그런데.. 모르겠어요..’ 이미 마음에서 지워져 버린 이야기. 이는 완성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완성이라는 것은 그래서 끝난다는 의미는 아니예요. 사람들은 끝난다는 걸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차피 끝난건데, 지나가면 어차피 끝날껀데, 이리 끝나든, 저리 끝나든, 끝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나는 최선만 다하면 되는 것 아니겠느냐고.. 그러면서 그 완성의 의미를 내 마음에서 지워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뭐가 문제인 줄 아세요? 그 다음에 다시 하기가 어렵다는 거예요. 내가 마음으로 포기해버린 것은 누가 그 다음에 다시 할 수가 없어요. 다시 하기가 어려운 일이 됩니다. 선교사가 사역지를 버려요. 이런 저런 어려움이 있어서 나는 여기서 더이상 못해요. 그래서 철수하며 마음이 떠나버려요. 하다가 인수인계를 한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접었어요. 그래서 거기서 철수해 버렸어요. 그러면 누군가는 거기서 다시 하기가 어려워요. 우리가 유럽 300교회! 디아스포라 교회를 섬기자는 주제를 하나님 앞에 드렸습니다. 교회 앞에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우리의 마음 속에 명분이예요. 어떻게 우리가 300교회를.. 어떻게! 누가, 언제까지! 그냥 해 보자는 말이지. 최선을 다 해보자는 말이지. 그래도 그 중에 몇개라도 해보자는 말이지. 그러다가 어렵거나 그러면 그냥 그 다음으로 미루면 되지.. 그런 생각을 우리가 처음부터, 제가 처음부터 가지고 있다면 분명히 언젠가는 포기될꺼예요. 그러면 포기된 것은 누군가 다시 꺼내기 힘들꺼예요. 누가 예전에 300교회를 섬기자는 얘기 좋았는데, 우리 다시 하면 어때요?’ ‘.. 그거? 부작용도 많았고, 하다가 흐지부지 된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그런 얘기하지말고, 내실이나 기해요.’ 아마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처음부터 그것을 알 수 있는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세요. ‘어미가 젖먹이를 잊어버리겠느냐? 젖먹이가 앞으로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서 내가 너를 버릴 수 있어! 늘 그렇게 얘기하겠느냐? 아니, 어미는 젖먹이를 잊지 못한다. 포기하지 못한다. 그런 , 설사 어미가 젖먹이를 잊어버리는 일이 생길지라도 나는 너를 잊어버리지 않겠다!’ 말씀하세요. 최선을 다하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어요. 예수님은 아버지, 내게 주신 사람을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겠나이다.’ 저는 하나님 앞에 약속하는 거예요. 우리 한마음교회에서 만난 성도들의 눈물과 고백과 기도를 알고 있는 그 사람들.. ‘하나님, 한 사람도 실패하지 않도록, 한 사람도 믿음의 길에서 떠나지 않도록, 한 사람도 멀어지지 않도록 주님 앞에 다 올려드리겠습니다.’ 심지어는 주재원 성도들.. 여기서 예수님 만나고 양육 받고..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아니요! 안 잊어버렸습니다. 십 몇년 전에 있었던 사람이 목사님, 혹시 혹시 저 알겠어요? 송집사인데요..’’왜 몰라! 늘 얘기하는데..’ ‘저 김집사인데요..’ ‘ 왜 몰라요, 그렇지 않아도 어디에 있는가 생각했어요. ‘ 그런데 하나님이 잊어버리시겠느냐고요. 그래서 주재원 성도들 여기저기 나라를 떠돌다 보니, 모교회도 정해지지 않고, 한국가면 다른 교회 가게 되고, 그래서 직분도 받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지나가버린 분들.. 그래서 우리가 25주년 내후년에는 (우리 교회 성도들은 여기 이미 다 올라가 있잖아요.) 주재원 성도들 있다가 가신 분들도 우리 교회에서 빛나게 섬긴분들 다시 초대해서, 우리 명예의 전당에 헌액하겠다고 하겠어요. ‘디아스포라 복음의 전당디아스포라로 이 나라 저 나라로 다니면서 그러나, 주의 교회를 위해 헌신한 분들. 그들에게 별처럼 이름을 달아줄꺼예요. 우리는 말할 것도 없어요. 한 명도 주님 앞에서 미완성이지 않습니다. 주님 앞에 별처럼 쓰임받다가 주님의 마음에 남아있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저희 어머니는 자녀를 위해서나 교회를 위해서나 기도할 때는 그렇게 얘기하셨어요. ‘아니야, 아니야. 내가 이렇게 마음으로부터 그러면 주님 앞에 죄가 되지. 그렇게 하지 않을꺼야부정적인 마음이 들면 계속 그렇게 고개를 흔드셨어요. 분명히 상황이 어려워지고 있지만, 기도하는 내가 마음에서 밀리며 안되지! 마음에서 밀리면 안되지! 그렇게 생각하셨어요. ‘독일에서 목회하는 우리 아들, 한국에 와서 목회하면 내가 한번이라도 더 볼텐데..’ 그러나 그 생각도 내가 벌써 밀리는 생각이고 우리 예수님 한테 너무 죄스러우니까 예수님한테 그렇게 하면 안되지! 그래서 그 기도를 안하신다고 그러셨어요. 우리가 힘이 없어서, 능력이 없어서, 기회가 없어서, 인생을 못 끝내고 완성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 중심에서 중심에서 떠나버리면 그 일은 완성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할 수도, 계승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완성할 수 있을까요? 성경은 우리에게 또다른 시각을 보여주는데, 완성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이름이 좀 다릅니다. 제가 찾아낸 대답은 이것입니다.

 

2. 끝내지 못해도 완성되는 인생

열왕기의 대표적인 사람 엘리야의 인생을 생각해봅니다. 그는 불같은 하나님의 사람이었는데, 그가 뭘 끝냈지요? 사실 끝낸 것은 없어보입니다. 북왕국은 배교의 길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고, 엘리야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분명하게 선포했지만 왕들이 변화되지 않았고요, 이세벨은 엘리야를 두려워하지도 않았습니다. 세상은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고, 그렇게 세월만 흘러 그는 은퇴가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엘리야의 열정은 사라지지 않았고,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 ? 다 이루지 못했는데도 그는 왜 실패하지 않았을까? 마음에서 거두어드린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마음 안에는 어떤 원수도, 어떤 이세벨도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내 주와 맺은 언약은 영 불변하시니..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주 물어 보실 때에 죽기까지 따르오니 저들 대답하였다! 우리 선배 신앙인들은 그렇게 찬양했습니다. 그의 영감과 믿음의 용기는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고 있다가 어느날 갑자기 부름을 받는 거예요. 여전히 해야 될 일은 많은데.. 그렇게 살리고, 사랑하고, 치유하고, 선포하고, 사역하다가 어느 날 하늘의 마차가 와서 그를 휘감아 데리고 가는 것입니다. 끝내지 못했지만 완성되는 인생이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사역은 계속되는 거예요. 시작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미완성입니다. 다시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미완성이예요.

 

마틴루터는 종교개혁자로 알려져 있지만, 그가 무엇을 개혁한 것은 아닙니다. 교황 제도에 대해서 불합리성을 개혁했다? 그건 그가 한 일이 아니예요. 마틴 루터가 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되돌려 놓은 것입니다. 라틴어에 갖혀 있던, 교회 안의 교회에 갖혀 있던 말씀을 평민의 언어로 다시 번역해 놓고, 복음의 의미를 다시 드러내서 새로운 하나님의 의를 가르쳐주는, 그래서 그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의 말씀이 전달되게 하는.. 그런 통로의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뭐를 완성했나요? 그가 완성한 것을 별로 없어 보입니다. 그가 그 자신의 혜택을 많이 받았어요. 종교개혁을 하는 덕에 그가 수도사였다가 결혼도 하게 되지요. 수녀 출신의 카타리나 폰 보라라는 여성을 만나서 결혼하고 행복한 시절도 보냈습니다. 노래도 잘하고 작곡도 잘해서 찬송가를 많이 만들었어요.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 되시니..’ 그러나 그 세월이 길지 못했습니다. 10년여 세월, 그렇게 행복한 세월을 보내는 듯 했는데, 페스트가 닥쳐왔고, 피난의 길을 떠나야 했습니다. 피난을 가는데 루터는 아들과 함께 자기의 교향인 아이스 레벤으로 갔고요, 왠일인지 그의 아내는 자기의 고향으로 갔습니다. 아마, 당분간 헤어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그들은 아쉽게도 다시 만나지 못합니다. 제가 동서독이 열린지 얼마 안되었을 때, 아이스 레벤을 찾았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마틴 루터를 모르고 있었고, 마틴 루터가 설교를 다 못마치고 내려온 안드레아스 교회를 찾는데도 동네에 슈퍼 아가씨는 모르고 있었어요. 그동안 복음에서 멀어진 동독 상황을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안드레아스 교회를 찾았습니다. 루터가 거기에서 마지막 주일 강단에 올랐는데, 몸이 아파서 설교를 다 마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그 다음날 세상을 떠났습니다. 루터의 그 데드마스크를 봤는데, 그 모습은 굉장히 부어있고 흉찍한 모습이었습니다. 여러가지 질병이 한꺼번에 왔는데, 장경색이 왔었다고 그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화려한 인생 77장을 살았던 프로테스탄트의 영웅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무엇을 완성했을까요? 그러나 그는 끝내지 못했지만 완성된 인생입니다. 왜냐하면,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 꽃피우기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로마서 주석을 통해서 요한 웨슬레는 하나님 앞에 큰 전도자로 변신하게 되었고, 그리고 그의 말씀은 사람들에게 그리고 주의 교회에게 큰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완성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무엇을 완성하게 하십니까? 그것은 내가 무엇을 매듭을 짓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이 계속 이어진다는 의미입니다. 그 하나님의 마음이 그 사랑과 그 비전이 우리를 통해서 계속 계승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완성이란, 계속될 수 있게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은 마음에서 무너지면 안됩니다. 누가 무너뜨려도 우리의 마음이 견고하면 우리는 무너지는 것이 아닌거예요. 사업이 문을 닫을 수 있습니다. 경제 상황이 좋지 않고, 여러가지 여건이 맞지 않아서 사업이 문을 닫을 수는 있지만, 우리가 패망하는 것은 아닙니다. 패망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이 망하는 것입니다. 사업이 문을 닫지만 우리는 망하지 않는 거예요. 최선을 다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고 새로운 기회를 갖게 됩니다. 공부를 마치고 길이 열리지 않는다고 실패한 것은 아닙니다. 준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마음이 떠나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떠난 사람을 어떻게 할 방법은 없어요. 김재희 목사님이 6년 사역을 하고 올해 말에 한국으로 갑니다. 제가 김재희 목사님에게 굉장히 집착을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와 6년을 있었기 때문이예요. 그래서 제가 완성된 사역자로 가기를 바랍니다. 최선을 다하다가 모르겠어요.. 그러고 가지 말라고요. 사역에 매듭을 가지고, 가서 장인답게, 복음의 수장으로 일할 수 있도록, 여기서의 6년 사역을 그렇게 마무리하고, 계승할 수 있도록 하라고. 그래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을 수 있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그만큼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끝내지 못해도 완성되는 인생! 우리 주님은 그런 분이셨습니다. 3년간 사역하셨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았고, 그를 배신하고 칼을 꼽고 떠난 유다에게도 예수님께서는 눈물을 보이셨어요. 엘리사는 하사엘을 기름부어 아람의 왕으로 세우면서, 그가 앞으로 어떠한 행악을 저지를지를 보면서 눈물을 짓습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세상,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마음으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포기하지 않고, 복음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 예배자로서 포기하지 않고, 주님의 부르심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우리의 운명은 결정되었습니다. 주님에 대한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3. 완성을 이루시는 이가 따로 계시다!

엘리야는 하늘의 마차를 타고 올리워 갑니다. 참 영광되지만, 제가 엘리야의 가족이라면, 병들어 죽은 것보다 하늘의 마차를 타고 올라가는 것이 훨씬 훨씬 슬펐을 것 같습니다. 비참한 슬픔이 아니라, 정말 아쉽고, 그 빈자리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슬펐을 것 같습니다. 엘리사는 실제로 너무 슬퍼했습니다. 나의 아버지여! 나의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이스라엘 전체와 버금가는 부재가 엘리사에게는 너무나 컸을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하늘 나라로 올리워가면서, 그가 사랑하는 하나님, 그가 사랑한 세상, 그가 선포한 말씀, 그의 불같은 싸움과 열정, 어느것 하나도 헛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가 사랑한 것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았고, 그의 믿음과 열정은 곧바로 이어졌습니다. 그의 인생공정은 하나님의 설계도 안에서 완성되었습니다. 그는 버림받지 않았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오래오래 기억되어서 아름다운 메타 스토리, 하나님의 큰 복음의 스토리 안에 그 엘리야의 이야기는 남아있습니다. 세례요한이 왔을 때, 사람들은 물었습니다. 엘리야가 누구냐? 엘리야가 다시 살아난 것이냐? 엘리야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엘리사도 죽었는데 그의 죽은 시신이 시체들에 닿으니까 시체들이 살아났다는 얘기를 열왕기서는 전하고 있습니다. 그는 죽어서도 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살리는 생명사역! 물을 파면 우물이 나왔고, 그 물은 살리는 물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의사가 환자를 포기할 수는 없지요. 한국의 의사들은 수명이 짧습니다. 그만큼 책임감이 막중하기 때문이예요. 가끔 부도덕한 이익만 생각하는 의사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대부분의 의사들이 그러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생명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예요. 그 책임감이 막중하기 때문이예요. 그래서 스트레스가 많고 수명이 짧습니다.

의사가 포기하면 환자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선생님이 학생을 포기하면, 선생님이 포기한 학생은 어디로 갑니까? 우리 아이들을 선생님이 포기하지 않았데요. 선생님이 눈물로 환영하고 축복하고 너무나 좋았데요. 거기에 우리는 힘을 갖는 거예요. 우리 그리스도인이 포기하면 세상은 어디로 갑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세요. 그러니까 우리도 포기할 수가 없어요. 완성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세요. 예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고, 그리고 다 이루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내 인생을 완성시키시는 분이십니다. 미완성, 부족한 서푼짜리 인생을 복음의 그릇으로 완성시키십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사랑의 복음을 그 영광에 합당하게, 우리의 삶과 고백과 믿음을 통해서 완성시키는 분이십니다. 그가 이루시리라! 이 고백으로 나가는 믿음의 성도들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직 주를 위하여

열왕기하 13장 14~21절

주일 본 예배

2021.11.28 / 이찬규 목사

인생별곡 - 미완성에서 완성으로

열왕기하 12장 1~3절

주일 본 예배

2021.11.21 / 이찬규 목사

누가 하늘의 창을 열 것인가

열왕기하 7장 3~9절

주일 본 예배

2021.11.14 / 이찬규 목사

기적의 하나님

열왕기하 4장 1~7, 32~37절

주일 본 예배

2021.11.07 / 이찬규 목사